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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나의 이야기 2022. 8. 15. 16:43728x90
“ 저분 얼마 전 부인과 사별하고 49제 지난 후 연습장에 나오신 거예요.
일흔한 살이신데 그동안 부인 간병하느라 연습장 못 나왔어요.” 얼마 전, 골프 연습장에 갔더니 백중날이라고 절에서
떡을 갖고 오신 분 얘기다. 떡을 얻어먹으면서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사정을 알고 있는 분의 답변이다.
골프 연습을 하고 있는 뒷모습을 보니 뭔가 쓸쓸하고 안쓰럽다.
배우자를 잃은 후 느끼는 상실감이 몸 안의 염증 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미국 대학교 연구진의 발표가 있다.
배우자와의 이별(사별)이 스트레스 중 최고라는 사실과도 같다.
저녁을 먹으며 그 얘기를 하면서 우리 부부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자고 약속했다.
“악처라도 옆에 있으면서 지지고 볶는 것이 낫지? 그랬더니
“악처보다는 착한 마누라가 좋지..” 남편은 악처보다 착한 마누라를 원했다.
쉰 중반을 넘고 보니 부부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검진할 때마다 긴장을
하고 해를 넘길수록 그 긴장감은 더 해간다. 몸에 좋다는 것을 챙기게 되고
운동도 하라며 서로에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
부부란 무엇일까? 무엇으로 사는 걸까?
어려서는 절대 결혼을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 가정형편이 어려울수록 술에 의지하며 돈 문제로 싸우는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너무 정말 싫었다. 저렇게 원수처럼 싸우고 살면서
어떻게 5남매를 낳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들처럼 풍족하게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애들은 왜 이렇게
많이 낳았냐고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난 저런 무능하고 무책임한 부모는 안 되겠다고 아버지처럼
술 먹고 주정하는 남자 싫다고 그래서 결혼은 절대 안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래서 여군이 되었다. 독신으로 살면서 군(軍)에서 입신양명하겠다고.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군(軍)에서 남편을 만났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교육기관에 갔는데 거기서
남편에게 첫눈에 낚여 버린 것이다.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다.
코스모스 핀 해 질 녘 동기생과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남편은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그게 가능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남편은 내 여자다. 운명이라고 느낌이 팍 왔다고 했다.
죽자살자 쫓아다니고 (마치 스토커처럼.)
엄마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4년의 줄다리기 끝에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이 28년. 참 긴 세월을 보냈다. 맞벌이 부부로 떨어져 산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수많은
이별의 시간이 있었고 애틋함도 그만큼 컸다.
이제는 서로의 흰머리를 애처롭게 여기고 잠자는 모습에 애잔함이 밀려온다.
우리는 흰머리도 안 생기고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탱탱할 줄만 알았는데~
흰머리는 뽑을 수도 없을 지경이고 한 해 한 해 건강을 염려하며 살고 있다.
남편은 자상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 마누라가 최고인 남자다.
5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암으로 어머니를 잃고 새엄마 밑에서
온갖 궂은일은 다 하면서 힘들게 장남의 역할을 감내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장남의 무게를
조금 벗었지만 여전히 동생들을 자식처럼 여긴다.
5형제 장남, 그것도 유복하지 못한 집안~~ 외모도 엄청나게 인정을 받지 못해
울 엄마의 결사반대와 모욕을 감내해야 했던 남자다.
지금은 누구보다 부모님에게 잘하는 착한 사위지만, 결혼을 반대했던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남아있다.
캠핑카에서 별헤이는 멋진 밤을...얼마 전 방송에 80대 부부의 얘기가 소개되었는데..
고물상을 하며 고생한 아내를 위해 탑차를 직접 개조해 만든 캠핑카로 전국을 여행 중인 부부였다.
그 모습을 보니 부럽고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몇 년 후 남편이 퇴직을 하면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여행하자고 했다. 사실 남편은 캠핑카보다
해외로 나가는 패키지여행을 좋아한다. 그것을 내가 캠핑카로 우겼다.
맞벌이 부부로 아등바등 아이 둘 키우며 열심히 모아서 어느 정도 은퇴해도 즐기며 살 정도는 되었으니
더 이상 욕심부리며 돈, 돈 거리다가는 그 소중한 시간을 다시는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둘 중 하나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가 버린다면 그 욕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기로 했다. 자식은 자식의 인생이 있고
우리보다 돈 벌 시간이 훨씬 많이 남았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들들에게도 얘기했다. 엄마 아빠 재산은
온전히 엄마 아빠가 쓰고 갈 거라고, 그 후에 얼마라도 남으면 그건 너희들 몫이라고~ 너무 박절한 부모인가?
그래도 할 수 없다.
내 인생, 우리 부부의 삶이 더 소중하고 노후를 편하게 보상받을 자격이 있고 보상받고 싶다.
부부는 전생의 원수가 만난 것이고 자식은 전생의 채권, 채무자 관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부부란 무엇일까? 우리 부부도 전생의 원수가 만난 것일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신혼의 그 뜨겁던(?) 시간은 오래전 끝났고 이제는 의리로 살아갈 나이다.
서로의 흰머리와 주름이 애잔한 사이다.
가끔 싸우기도 하고 나를 섭섭하게도 하지만 누구보다 다정한 남편이다.
남의 편이 아닌 온전한 내 편으로 오래오래 같이 있어주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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