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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광주리 철철철 넘친다.
TV에 나오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직장생활 그만 둘 날짜만을 손꼽으며 지방에 땅을 샀다.
남편의 직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200평 조금 넘는 땅이다.
농사 경험도 전혀 없고 풀인지 냉이인지 구분도 못 하던 때!
그 후 4년이 지났다. 그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첫 작물로 무엇을 심을까?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결정한 작물이 도라지였다.
슈퍼도라지! 크기도 일반 도라지보다 훨씬 크고 약성도 강하고 키우기도 쉽다고
해서 결정했다. 도라지는 어린 시절 기억도 있어서 그리 낯선 작물이 아니었던 이유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물려 주신 작은 시골 땅을 팔아서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갔다. 농사는 절대 안 짓겠다며 땅을 팔아
장사 밑천을 만든 것이다. 내 나이 대여섯 무렵이다.
4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가서 영등포 시장 안 작은 구멍가게(잡화점)를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장사는 망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집으로
돈 받으러 무서운 아저씨들이 왔던 것 같다. 간신히 빚 정리를 하고 돈 한 푼 없이 외가가 있는 대구로 내려왔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고 뒤늦게 낮은 직급의 공무원이 되셨고 엄마는 5남매를
키우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9살 터울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서 5남매가 되었고 가끔은 친척 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그 시절 가정 형편은 아주 어려웠다. 일곱 식구가 작은 단칸방에서 발도 뻗지 못하고 잠을 잤다. 온 식구가 누우면
엄마는 눕지도 못하고 벽에 기대어 눈을 붙이곤 했다. 중학생이던 큰 오빠는 공납금을 제때 못내 학교에서 혼이 나기
일쑤였고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속상해했다.
엄마는 이것저것 시장 노점에서 장사했다. 양말과 속옷. 채소를 팔았는데~~ 가장 오랫동안 도라지 장사를 했다.
번듯한 가게 하나 없이 노점에서 돌이 지난 막냇동생을 업고 도라지를 팔았다. 깨끗하게 까서 판 도라지가 좀 더
비싸서 굳이 힘들게 도라지를 깠던 것 같다.
명절 대목이 되면 작은 단칸방은 도라지 산더미로 변했다.
도라지를 까는 일은 나와 아래 여동생 담당이었다. 학교 갔다 와서 가방 내려놓기가 무섭게 도라지 까기가 시작된다.
울 엄마는 잠도 못 자고 밤새 도라지를 깠던 것 같고 간간이 어렵던 그 시절 얘기를 하신다.
노점상에 대한 단속도 심하던 때라 단속원이 수시로 나타났고 장사판을 뒤집거나 강제로 실어가는 일도 많았다.
갓 돌이 지난 막내 여동생은 엄마의 등 뒤에 업혀있다가 단속원이 나타나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는 엄마 팔을 끌며 알려줬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는 급하게 장사판을 싸서 도망 다녔다고 한다.
생각하면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도라지인데 그런 내가 도라지를 키우게 되니 아이러니이다.
흰색과 보라색 도라지꽃이 피면 참 예쁘다. 꽃차로 만들어 먹으면 향도 참 좋다.
도라지 씨를 받아 심고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참 신비롭다. 그 작디작은 씨가
싹을 틔우고 튼실한 도라지를 만든다니~
첫해는 도라지꽃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해서 사진도 찍고 법석을 떨었다.
마치 엄청난 농사꾼이 된 것처럼 즐거웠다.
서울 집과 천안을 오가며 살고 있다. 농사가 시작되는 3월부터는 주로 천안에서
생활한다. 배로 유명한 성환읍이다. 지금은 배꽃 망울이 나뭇가지마다 달려서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흰 배꽃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성환읍은 1일과 6일이 장날이다. 운동 겸해서 장 구경하러 갔다.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고
순대국밥도 유명해서 가끔 먹고 온다.
시장 구경은 참 재미있다. 강아지,토끼,새도 팔고 사람구경도 하고 모처럼 장사꾼들로 활기가 넘친다. 장사하는 분들을 보니 울 엄마가 생각난다.
천안시는 도시지만, 성환읍은 약간 외곽이고 농촌 느낌이 더 강한 곳이다. 서울처럼 교통도 좋고 한 발짝 떼면 은행과
백화점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서울의 복잡함과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 비하면 여유와 한가로움이 있다.
남편의 직장인 이곳과의 인연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고 몇 년은 더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수지에서 산책도 하고
사계절 꽃 피는 것도 감상하고
농부의 땀방울도 느끼며 내 땅에 푸성귀도 심어먹으면서 유유자적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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