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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둘째 며느리에게나의 이야기 2022. 4. 23. 07:16728x90
“엄마 아들 육군사관학교 붙었어. 하하하”
4년 전 육사 합격 소식을 전하는 둘째 아들의 문자를 받고 기쁨을 함께 나눈 기억이
엊그제 같다.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주하고, 눈 쏟아지는 겨울에 한라산을 등정한 의지를 보인 아들이기에
4년의 생도생활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역시 아들은 잘 해내었고 지난 3월 초 소위로 임관을 하였다.
미래의 둘째 며느리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차피 아들의 배우자가 된다면 며느리 또한 우리와 같은 군인 가족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군인, 그리고
군인 가족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의 염려와 조언이 될 것이다.
무작정 군복이 좋았다.
단발머리 중학생 때부터 직업군인의 꿈을 키웠다. 여군장교 선발시험에 첫해 낙방을 경험했고 포기가 안 되어
두 번째 응시했다. 마지막 면접 관문에서 면접관의 질문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인 것 같은데 또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삼세판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떨어지면 한 번 더 도전해서 꼭 여군장교가 되고 싶습니다.” 그 의지가 가상(?)했던지 합격을 했고 9년을
복무했다. 주로 정보 분야 부서에서 근무했고 마지막 근무지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하는
강원도 인제에서 심리 전장교를 했었다.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으면서 힘든 점도 참 많았다.
지금은 교통도 그렇고 육아의 여건도 당시보다는 훨씬 좋아진 것 같지만 군인이자
엄마로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 아들을 낳을 때는 부부군인이었던 때라 출산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은 후 멋쩍고
미안한 표정의 남편을 대면할 수 있었다. 출산 때는 늘 남편이 훈련 중이거나 부대 일로 곁을 지키지 못했다.
출산 시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
병원에 가면 산모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데, 직업란에 군인이라고 썼더니 간호사가 말 하기를, “남편 직업 말고
산모분 직업을 써주세요.”
여군이 드물던 시절이었으니 산모가 여군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산모의 직업이 군인인 걸 안 간호사, 멋쩍은 표정으로
“아, 그래서 씩씩하셨나 보네요.” (오래전 추억이다.)
당시 동료 전우들의 경험담도 비슷했다. 아내의 출산 후 병원을 갔더니 미혼모 취급을 당하고 있어서 속상했다는
웃고픈 진술(?)도 들었다. 그때는 그랬었지!
요즘은 부부군인의 근무지도 인근 지역으로 배려해주고 육아휴직도 쓸 수 있다고 하니 참 좋은 세상(?)이 된 것만은
분명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근무지가 달라서 한 달에 한두 번 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성장해가는 모습도 지켜볼 수 없었다. 지인에게 맡기거나 부모님께 맡겨두고 아이들을 보러 갔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
그 아쉬움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큰아들이 서너 살쯤 잠자리에서 하던 말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엄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아이가 나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싶어 밤새 잠도 못 자고 아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쳤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헤어짐의 시간이 가까워 지면 아들도 울고 나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싶었다. 군인으로 그리고 군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평범한 일상과 다르다.
근무지에 따라 가족이 함께 이사를 하기도 하지만, 남편(혹은 아내)만 따로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자녀들 교육 때문에
스스로 이산가족을 선택하고, 주말부부로 지내기도 한다.
포장이사가 드물던 시절에 이삿짐 싸는 달인이 되었다. 훈련할 때 군장을 싸는 것처럼 뚝딱뚝딱 이삿짐을 싸고
근무지를 옮겨 다녔다. 평균 2년에서 3년에 한 번은 근무지를 옮겨 다녔다. 지금은 포장이사가 있어 편리해졌지만
그래도 일정 기간 후면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 세 가지는 직업, 배우자, 가치관이라고 한다….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아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아들의 모습에서 흐뭇함과 자부심도 느낀다. 그래도 부모의 직업이
좋게 생각되었구나 하는 생각!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아들은 그랬다. ‘엄마 아빠의 군인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군인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라온 성장 환경의 영향이겠지!
두 번째 중요한 배우자의 선택이 남았다. 군인의 아내로 살아갈 현명한 배우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범하지 않을 군인의 아내로 잘 내조할 수 있는 그런
배우자 만나기를, 쉽지 않을 군인 가족으로서 삶을 잘 인내하며 감내할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기만 소망해 본다.
군인과 군인 가족으로 살아왔던 엄마 아빠의 삶을 걸어갈 소중한 아들의 무운장구와
미래의 며느리와의 행복한 만남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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