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15년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났답니다. 전날 밤엔 설레는 마음으로 잠까지 설쳤는데요. 대학졸업 후 여군으로 입대하고 9년여 군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소식이 끊겨 많이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15년만에 만나게 되었답니다.
86년도에 대학입학 후 가입한 써클(동아리)이 사진반이었어요.사진을 배우고 싶기도 하고 카메라메고 촬영다니는 선배들의 모습이 멋있기도 했거든요. 당시 대학캠퍼스는 온갖 대자보로 도배가 되었고 연일 시위가 벌어져 최루탄 가스에 강의가 없는 날(휴강)이 많았거든요. 전형적인 386세대의 모습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요. 1학년때부터 써클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전공공부보다는 써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열정을 쏟았답니다. 그 당시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을 15년만에 만난 것인데요.
언제부턴가 TV에서 친구찾기 프로그램을 보니 문득 친구들이 생각나더라구요.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나이가 되어서인지 몰라도..문득문득 친구들 얼굴이 그립더라구요. 어떻게 찾을까 방법을 생각해 보니 인터넷 홈페이지가 생각났어요. 다행히 써클 홈페이지를 찾았고 친구들의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들 변했을까 나를 알아보기나 할까, 나 또한 친구들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마치 선보러 나가는 아가씨의 마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구요.
약속장소에 도착해 보니 식당엔 긴 머리의 뒷 모습을 보이며 왠 아저씨가 "어서 오세요. 하는데 예약석엔 아직 아무도 없고.. "아직 안 왔네. 하며 긴 머리 남자에게 화장실을 물으니 "저 쪽이예요. 한다. 알았다며 고개를 돌리고 화장실로 가는 동안 이상한 느낌이 온다. 그 긴 머리 남자는 친구 송모군이었어요. 감쪽같이 저를 속인거죠. 머리를 기르고 안경을 썼으니 제가 친구의 얼굴을 못 알아본 것이죠. 그 친구는 전공과는 달리 써클에서 배운 사진기술로 고향에선 꽤나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거든요. 둘이 앉아 있으니 하나 둘 친구들 등장.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들 이더군요. 우리가 만난 지 내년이면 20년이 되니 그럴 법도 하죠. 전 과거 86년도 만날 당시 친구들의 모습만 상상하고 있었으니까요. 살도 찌고 배가 나오고 이마엔 주름이 하나 둘 보이고 안경도 끼고..한 친구는 어찌나 살이 쪘는지 당시 모습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변했더군요. 본인의 항변으론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하네요. 남들은 믿지 않는데... 만나서 묻는 얘기들이 "아이는 몇이니? 몇 살이니?" 그러다 술 잔이 몇 순배 돌고 얼굴이 붉그레 해지자 옛 추억속으로 풍덩 빠져들더군요. 사진촬영가서 생긴 에피소드, 386세대들의 당시 고민, 결혼한 써클 커플 얘기 등등..
참 많이들 어울려 놀러 다녔고, 유흥비(?)가 없던 남자친구들은 전자계산기와 시계를 전당포에 잡힌 얘기,술이 취해 집에 못가서 버스 안에서 잠든 얘기와 친구 집을 찾아 전전한 얘기들을 쏟아내더군요. 당시는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가 줄줄이 알사탕마냥 엮여져 나오는데 어찌나 우습고 황당하던지 "깔깔깔,하하하,호호호..
다행히 식당엔 손님이 없어서 마음껏 떠들 수가 있었지 아니면 쫒겨났을 걸요. 남자친구들과 내가 예비역이어서인지 자연스레 군대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칼 퇴근이 수칙이던 방위(지금은 공익요원)시절, 새벽까지 야근시키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정강이를 때린 간부를 찾아달라는 친구, 웃기는 건 그 간부의 이름을 잊어버려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죠. 기억력이 쇠퇴한 탓에..자신들이 군 생활하던 당시엔 참 많이도 맞았다며 지금은 군대 좋아졌다는 남자친구들의 얘기엔 저 또한 깊은 공감을 표시했죠. 같은 예비역으로서,. 1학년 마치고 해군에 입대한 남자친구 왈, "야, 넌 왜 여자가 군대갔냐? 너 성격으론 군대 안 갈 것 같았는데, 내숭떤거냐?" "남들은 그러지, 나의 조용한(?)성격으로 어떻게 군생활을 했냐고? 하지만 중학교때부터 내 꿈은 여군장교였단다. 친구야..
사는 얘기, 아이들 얘기,직장생활,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친구와 선.후배들 얘기로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보니 11시가 다 되어서야 헤어졌는데요. 시간만 허락한다면 밤새워서라도 옛 추억속에 빠질 수 있었는데.. 내년은 우리가 만난 지 20년이 되는 해,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자며 훗날을 기약하고 서로의 건강을 빌었는데요.
돌아오는 길, 시간의 흐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 스무 살때로 돌아갔다 온 느낌으로 행복했답니다. 옛 추억속엔 그리운 얼굴도 있고,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얼굴도 있게 마련인데요. 추억 속 그리운 얼굴이 있다면, 먼저 찾아보세요. 더 늦기전에요. 찾을 수 없는 시기가 왔을 때 뒤늦은 후회를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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