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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인아내라 행복했어요!
    나의 이야기 2015. 2. 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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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나 전역지원서 내야겠어”

    “뜬금없이 뭔 소리야. 내년 1월에 전역이쟎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전역지원서를 내야 겠다는 남편! 한 대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했다. 전역예정일은 내년이고, 5월에 직업보도반 과정 들어가면서 차분히 전역 후 진로를 준비하자고 약속한 터였다.

    그런데, 내겐 말도 없이 작년부터 준비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에 다시 지원을 했는데 덜컥 최종면접까지 올라가서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다.

    25대 1의 경쟁률이라는 데.. 설마 안되겠지 싶었다.

    ‘안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마. 다른 길이 있을 거야.’ 라며 위로해 놓고는...

    막상 최종 합격해서 당장 출근을 해야 한다니, 선뜻 축하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이 너무 커서, 마음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 달말 전역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21년 군 생활! 그 중 8년은 부부군인으로 지낸 시간이었다.

    그 수많은 사연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책을 써도 족히 몇 권은 될 것이다.

    영·호남이 고향으로 평생 만날 일 없었던 인연을 맺어준 건 군복이었다.

    주말 부부로, 월말 부부로 애틋하고 아쉬웠던 시절도 있었다.

    두 아들은 군복 입고 낳았고, 키우면서 사연도 참 많았다.

    지금도 남편은 살며시 내 손을 잡고는 “당신, 고생 많았지?”

    말속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스며 있음을 내 어찌 모를까?

    처음으로 남편의 눈물을 보았던 때가 있었다. 소리내어 펑펑 울었다.

    사나이 눈물이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강원도 모 사단사령부에서 같이 근무하던 때,

    첫 해 소령 진급에 떨어지고 위로회식에서 못 먹는 술을 마시고 왔다.

    속 상한 마음에 술이 취할 정도로 마시고 와서는 소리 내어 울었다. “미안해, 1차 진급해서 당신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괜챦아, 내년에 기회가 있는데 뭐가 문제야.”하며 위로해 주었지만

    내 자존심도 함께 무너졌다. “내 남편이 왜?” 이렇게 열심히 했는 데..

    다음 날, 애꿎은 승용차를 수세미로 박박 닦아서 흠집만 내고 말았다.

    그 후로도 진급 때만 되면 마음을 졸였다. 진급 발표 날! 하루 종일 남편 전화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전화가 오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다.

    “되든 안 되든 기다리는 사람에게 전화라도 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며..

    실은 진급 되지 않은 남편에 대한 화풀이 였다. 내년엔 꼭 될꺼야 하며 또

    한 해를 기다렸고, 진급이 안 되었을 때는 화도 내 보고 울기도 했었다.

    “왜 남들처럼, 진급이 안 되냐고? 당신보다 훨씬 못한 동기들도 진급하는 데 뭐가 문제가 있어서 진급이 안 되냐고?”

    진급 발표 날,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 물고 까맣게 속이 타 들어갔을 남편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음을 후회한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력(人力)으로 어쩔 수 없는 일 이었던 것을....

    지나고 보니, 진급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군인아내는 이사의 달인이다. 2∼3년에 한 번씩 보직 바뀔 때마다 이사를 하니 남편 없이도 혼자 척척 이삿짐을 싸고 풀고 한다. 언제든 이사짐 쌀 준비를 하고 어디든 이사 갈 준비를 하며 산다.

    두 아이 낳을 때면 번번히 훈련이다 부대일이다 해서 곁에 있어주지 못한 남편!

    혼자 아이 낳고 나면, 미안해 하며 꽃다발 들고 나타났던 남편!

    이 땅의 많은 군인 아내들은 그렇게 이삿짐을 싸고, 아이도 낳아 키웠다.

    이제 몇 일 후면 군인아내 역할도 끝이 난다.

    군인아내 역할 대단하게 한 것도 없이, 민간인(?)의 아내가 된다.

    참 서운한 일이지만, 군인아내로 살아 온 지난 시간은 참 행복했다.

    부부군인으로 함께 군복을 입었던 시간이 행복했고, 군인아내라서 행복했다.

    두 아들도 엄마,아빠가 군인이었음을 자랑스러워 한다. 가끔 친구들이 ‘아줌마, 군인이셨어요?하고 묻는 걸 보면 은근히 엄마,아빠가 군인이었음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가끔 “엄마는 왜 군인이 됐어?” 묻는다.

    “엄마는 원래 꿈이 군인이었고, 원하는 군인이란 직업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군인만큼 사명감 있고 보람된 직업은 없는 것 같아.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군인 되고 싶어.”라고 말한다.

    내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직업)을 하면서

    자부심과 사명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남편 전역하는 날, 무슨 말로 위로와 축하를 해 줄지 적당한 말을 생각중이다.

    “군인아내라 행복했어요. 너무 수고했어요.” 이 말은 어떨까?

    이 땅의 모든 군인아내들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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