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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령 님이시죠? 예전에 OO사단 OO처에서 심리전 장교였던 김태선 대위입니다.
저 기억하시겠어요?”
“오^^ 김대위, 기억하죠! 근데 제 번호를 어떻게 알았어요?”
신기한 일이다. 2000년도 전역 당시, 마지막 근무지에서 같은 부서 보좌관과 심리전 장교로 함께 했던 분이 바로 김대령 님이다.
전역한 후에는 당시 함께 근무했던 옛 전우를 통해 김대령 님의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 전부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극적으로 연락이 된 것일까? 생각지 못한 우연이었다.
지난해 사관학교 4학년이던 둘째 아들이 학교 홍보 활동차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 아들의 제복 입은 모습을 보고 사관학교 후배라며 아는 척을 했던 분이 바로 김대령 님이셨다. 이동 중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육사 생도 시절 얘기, 진로에 대한 조언과 30여 년의 군 생활 얘기 등 인생 선배이며 군(軍) 선배로서 까마득한 후배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김대령 님은 원래 말이 좀 많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보통은 사관학교 후배구나 생각하고 스쳐 지나갈 인연이었을 텐데 아들을 붙잡고 오랜 시간 얘기 나눈 것을 보면 여전히 말씀을 많이 하시는 듯(?)하다.
홍보활동을 마치고 집에 온 아들이 사관학교 선배님을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얘기를 했다.
“진짜 우연이네. 지하철에서 육사 선배님을 만나다니! 제복을 보고 후배라고 말을 걸어주셨나 보구나.
감사한 일이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근데, 몇 기라고 하시데?” 엄마 아빠 연배 정도 되시나?
OO기 OO병과 OOO대령님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
“헐? 정말?? 그분은 예전에 엄마랑 같은 부대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분인데!
너무 뜻 밖이고 반가운 일이네. 엄마 전역 후에는 연락이 안 되었는데, 전화번호도 바뀌고 해서. 어떻게
울 아들이 김대령 님을 만났지? 기막힌 우연이네."
아들이 명함을 한 장 받아왔다. 전역 후 취업한 직장인 듯했다. 명함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했고
연락이 된 것이다. 처음엔 모르는 번호라 안 받으시다가 며칠 후 다시 하니 전화를 받으셨다.
너무 뜻밖의 전화가 믿기지 않은 모양이셨다.
우연챦게 지하철에서 만난 후배가 옛 전우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신기해하고 반가워하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나누고 (아주 오래전 현역 시절의 그때 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앞으로 좋은 일 있으면 연락하자고 했다.
전역한 지 20년이 지나니, 옛 전우들은 기억 속에서 그 시절 그 모습으로만 남아있다. 연락이 끊겨 안부가 궁금한 분도 많고 가끔 연락을 하며 지내는 분도 있다. 군(軍)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이다.
故피천득 님은 그의 글 '인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리워하면서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소중히 기억되는 인연도 많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연도 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있었던 일인데 자칫 오해로 멀어지게 된 안타까운 인연이 있다.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사는 인연이다.
오해로 멀어지고 인연이 끊어진 후배가 있다. 군(軍) 후배이고 전역 후 들어간 직장에서 만난 인연이다. 그녀의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후에는 무척 나를 따르고 의지하고 좋아했다. 여동생처럼 귀엽기도 하고 재밌는 친구라 많이 친하게 지냈는데.. 한 순간 오해로 멀어졌고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끝이었다.
서로가 좋아하고 친했던 만큼 실망과 배신감이 컸던 것 같다. 오해가 오해를 불렀고 그녀의 닫힌 마음은 무엇으로도 열 수가 없었다. 섭섭함에 내 마음도 닫혀버렸고 그렇게 멀어졌다.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오해를 꼭 풀고 싶다. 지금도 그녀와의 일이 늘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선배로서 먼저 마음을 열었어야 했는데..
많이 아쉽다.
내게 참 잘해준 소중한 인연들도 많다. 그 감사함을 보답해야 하는데 지금은 연락이 안 되어 아쉬운 분도 있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지만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이다. 이 세상에 없는 분들과 멀리 있어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들이다. 지난 기억으로만 자리 잡고 있다. 감사라도 했어야 했는데..
이 생이 끝날 때까지 만날 수 없는 인연이 대부분이다.
군(軍)에서 맺은 40여 명의 동기들, 군 생활 중 함께 동고동락했던 전우들, 전역 후 직장 생활 중 맺은 모든 인연들, 4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가족으로 맺어진 인연들...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 이런저런 인연들...
수많은 인연들의 얼굴이 기억된다.
지난 인연을 소중히 기억하면서 다가올 인연도 소중히 기다려야 봐야겠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걱정해주는 이 가 있다는 것은 참 고맙고 행복한 일입니다.
나도 그대를 잊지 않고 맨날 맨날 기억하겠습니다'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해주고 있을 그 인연을 소중히 기억하며 살고 싶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맘 때쯤은 옛 인연들이 생각나는 때다.
전화하기 쑥스러우니 짧은 감사의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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