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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들이 그랬어요.카테고리 없음 2023. 9. 27. 13:05728x90
"엄마, 친구들이 예전에 엄마가 여군이었다고 하니까, 너네 엄마 조폭(조직폭력배)이니? 그러던데.. "
웃음이 나온다.
친구들이 어떻게 엄마가 여군이었던 것을 알았냐고 물으니,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얘기했는데,
반 전체에 소문이 퍼져 친구들이 모두 알게 되었단다.
여군이 조폭인가?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물었더니,
"내 생각엔 아직 우리나라엔 여군이 많지 않고 용감해 보이니까 그런 것 아닐까?"
어젯밤 잠자리에서 두 아들을 옆에 끼고 나눈 얘기이다.대한민국의 미래와 남북통일, 군대 문제까지 진지하고도 다양한 논의(?)를 벌였다.
엄마 아빠가 군인이었던 어린 시절, 큰 아들은 그림을 그려도 항상 탱크, 총, 비행기, 총 든 병사들의
전투 장면 등을 그렸다. (또래 사촌이 아파트 숲과 빌딩을 그릴 때.)
주변에 보는 것이 군인 아저씨들이었고 부대의 모습이 전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래서 친정엄마께선 자란 환경은 속일 수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올해 열 살인 큰 아이의 어릴 적 꿈도 군인이 되는 거였다.
군복 입은 엄마 아빠 모습만 봐서인지 당연히 군인이 되어야 하는 걸로 생각한 모양이다.
군(軍)에서 최고 높은 사람이 누구냐고 하길래 별 네 개 장군(大將)이라고 했더니
그럼, 자기도 대장이 되겠다고 했다.
다섯 살 무렵, 군인은 체력이 강해야 한다며 밤마다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놀이터에서도 철봉 오르기,
줄 타고 오르기 등 체력단련(?) 놀이기구를 즐겼다.
그랬던 아이가 요즘 생각이 좀 변한 것 같다.
최근 부쩍 군대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아직 군대 가려면 10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고민에 빠졌다.
아빠가 군인이고 엄마도 예비역인데, 군대에 안 가려는 아들이라니.
아이는 뱃속에서도 훈련장을 돌아다니며 태교를 했는데, 어째 이런 일이.
얼마 전엔 난데없이 연예인이 되겠단다.평소 유머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웃기던 아이이기에 그 방면으로 관심이 있냐고 했더니,
연예인이 되겠다는 이유인즉슨 연예인이 되면 병역비리로 군대 안 가도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TV 뉴스를 본 모양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어른들의 나쁜 행동들이 여과 없이 아이들의 눈에 체크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래도 군인 아들이 군에 안 간다면 말이 안 된다고 했더니, 그러면 박사가 되겠단다.
박사가 되면 군대 안 가도 되기 때문에.. 방위산업체 근무요원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런 사실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군대 안 가는 방법.
갑자기 왜 아이가 군대를 안 가겠다고 하는 걸까? TV의 영향인가?군대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보고 군대 가면 선임에게 혼나고 훈련도 힘들다고 미리 겁을 먹은 것이다.
"여자인 엄마도 군에 가서 훈련받고 다 했는데, 씩씩한 우리 아들이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 달랬더니,
요즘은 조금 마음이 바뀌었다. 군대는 가는데 가장 편한 병사가 누구냐는 것이다.
정보병, 전산병, PX병.. 하는 일이 뭐냐고 묻더니, 결론은 PX병이었다.
PX병은 과자만 잘 팔면 되고 전쟁이 나도 총 들고 싸우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이다.
어젯밤 두 아들이 번갈아가며 쏟아낸 질문, 질문들..
"여자는 군대 안 가도 되는데 엄마는 왜 군대 갔어? 남자들과 똑같이 훈련했어?전쟁이 나면 엄마도 군대 가야 해? 전쟁 나면 몇 살까지 군대 가야 해?부터 남북통일문제까지..
통일문제에 이르자 순진한 우리 큰 아들의 긴급제안, "엄마, 남북통일하는 간단한 방법(?) 생각났어.
뭔데 하고 물으니,
"남한이 민주주의로 북한까지 통일을 하던가, 북한이 공산주의로 남한을 통일하면 된단다.
아이의 순진한 생각을 듣고는
"우리나라가 공산주의로 통일이 된다면?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설명해 주었다.
동서독의 통일과정을 얘기하고 탈북자 강철환 씨가 쓴 "수용소의 노래"책 얘기까지 덧붙였다.
수용소에서 도롱뇽, 쥐, 뱀 등을 잡아먹으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말해주며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했더니, "엄마, 정말 북한이 그런 나라야?" 어떻게 사람이 쥐를 먹어,
너무 징그럽다. 북한 사람들 너무 불쌍하네.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결론은 그래도 군대는 가야 한다로 아들을 설득했다.
"자신의 목숨만 아깝다고 군대 가지 않으려고 하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키냐?"
나라가 없어지면 아무 소용없다 등등..
그러나 뉴스를 통해 아이들도 보고 들은 바가 있기에 갖가지 비리와 술수로 병역을 기피하는 일부(?)
사람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설명해 주기엔 다소 벅찬 느낌이다.
양심과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 기성세대들이 깨끗하고 당당하지 못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양심을
강요하고 교육시킨다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잠은 좀 부족했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모자지간은 잠자기 전 나란히 누운 이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소망이나 상대에게 원하는 바를 얘기하기도 하고
서로가 읽은 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직장을 가진 탓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 함께 하지 못하는 엄마의 미안함을 만회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고민이 한 가지 늘었다.김대위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PX병이 되겠다니..
그렇다고 PX병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해 없기를..)
어떤 존재든 어떤 직책이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까, 단지 부모의 욕심 탓으로 돌리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군대 가는 10년 쯤후엔 조국 대한민국의 모습도 많이 바뀌어 있겠지?
통일된 이 땅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유를 만끽하며 풍요로움 속에서 더욱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어쩌면 10년 후에는 우리 아이들이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올 수 있지도 않을까?
1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으면 좋겠다.
- 두 아들이 초등학생 무렵, 블로그에 쓴 글이다 -
PX병을 하겠다던 큰 아들은 육군 병장으로 전역을 했고(해외 파병까지 갔다 왔다.)
둘째 아들은 직업군인이 되었다.(사관학교 졸업 후 현역 근무 중이다.)
대한민국도, 군대도 많이 변했고 이제는 PX병도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나의 흔적을 남기는 기록의 과정이자 기억의 저장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아이들에게 엄마의 체취를 느끼게 하고 싶은 바람(욕심)이다.
오래전 쓴 글을 읽으니 감회도 새롭고 당시 기억도 생생하다. 어제 일인듯..
그래서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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