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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와?” 눈 뜨자마자 비가 오는지부터 확인한다.
“응, 비 오네. 좀 전부터 시작” 일기예보를 듣고부터 비를 기다렸다.
비가 내린다. 조금 굵어진 빗소리가 들리고 바람도 분다. 얼마나 내려주려나?
밭에 심어 둔 작물이 비를 맞고 한 뼘은 더 크겠다. 농부의 마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비를 좋아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연인과 헤어졌을 때 비에 모든 것을 씻겨 보내듯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눈을 좋아하는 사람은 눈처럼 질척거리면서 미련을 못 버린다는 것이 연애의 속설이다.
故조병화 시인의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이라는 시를 읊조려본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잎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 않은 사람은
사랑의 뜻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장사를 하셨다. 이런저런 잡다한 물건들을 노점상에서 파셨는데 그래서
엄마는 집에 없고 바쁜 존재였다.
일곱 식구 아침 차려주기 무섭게 장사를 나가셨다가 어둑해져서야 집에 오셨다.
엄마가 그리웠고, 엄마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친구네 집을 놀러 다녔다.
예쁜 홈드레스를 입고 반갑게 맞아 주며 간식을 챙겨주는 친구 엄마가 부러웠다.
엄마의 오랜 장사는 큰 오빠네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끝이 났다.
엄마 나이 쉰 살 무렵 첫 손주 육아를 시작했고 그 후 줄줄이 우리 아이 둘, 여동생네 아이 둘 번갈아 가면서
맡기다 보니 육아가 직업이 되었다. 그 무렵 아버지도 정년퇴직하셨고 별다른 돈벌이 없이 육아비를 받아
생활을 하셨고 손주들 육아는 10여 년 넘게 계속되었다.
비를 좋아하게 된 것은 비 오는 날에는 엄마가 장사를 안 나갔기 때문이다.
번듯한 가게 하나 없이 노점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비 오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쉬었다.
비 오는 날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의 반가운 마중과 김치부침개나 찐빵을
얻어먹으며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받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다.
그 외로움과 그리움이 싫어서
나는 '일하는 엄마, 바쁜 엄마'로 내 아이들은 외롭게 하지 말자 다짐도 했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맞벌이 부부군인으로 육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큰아이는 돌 무렵까지 군인아파트에서 이웃에게 맡길 수 있었지만, 강원도 오지에서는 아이를 돌볼 여건이
안되었다. 할 수 없이 큰 아이가 두 돌 때쯤 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기고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 보러 갔다.
두 살 터울로 작은 아이가 태어났고 일 년 정도는 둘을 맡겼었는데~ 아들 둘 돌보는 것이 버거웠던
부모님 하소연(?)에 큰아이만 강원도로 데려왔다. 아무 대책 없이..
모든 것이 힘들었다. 아이도 나도 남편도!!
이리저리 허둥지둥 여기 맡겼다 저기 맡겼다. 당직근무를 서는 날은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런 여건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싶고 아이가 느꼈을 외로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많이 미안하다.
작은 아들은 가끔 어릴 적 할머니 손에 맡겨 키웠다고 원망 섞인 어리광을 부린다.
어렸지만 아이도 외로웠을 것이고 그래서 투정을 하는 것이라 받아준다.
지금은 텃밭 농사 때문에 비를 기다리고 좋아한다. 지하수를 파지 않고 오롯이 빗물로 농작물을
키운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비를 기다리며 애도 태운다.
빗물을 받아두었다가 쓰는데 넉넉지 않을 때가 많아서 물통이 비면 초조해진다.
물통이 가득 차야 배가 부르고 걱정이 없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은 하늘(날씨)이 적절히 도와주어야만 작물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할빠할마'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아빠, 할머니+엄마의 합성어라는데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육아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기며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이 기존 부모의
역할과 같이 중요해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주변에도 할빠할마들이 많다.
손주 손녀의 유모차를 끌고 나오거나 유치원 등하교를 시켜주고
손주 손녀와 캠핑도 다니는 멋진 할빠할마들도 있다.
남편은 미래의 손주 돌봐준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우물 가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아직 장가도 못 보냈는데 어느 세월에 손주를 본다는 것인지?
육아는 힘들고 자신 없다고 하는데도 남편은 우리가 잘 키워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혼자서라도 키우겠다는데.. 이를 어쩌나?
26년의 치열했던 직장생활에서 벗어나서 이제 겨우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손주 돌봐주면 이 소중한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두렵다.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래도 지금은 손주들 안 봐줄 거라고 큰소리(?) 치지만 어쩔 수 없는 여건이 되면 봐 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부모님이 내 아이들을 돌봐주셨던 것처럼.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니까! 자식들이 부탁하면 못 이기는 척 봐줘야 하나?
부모라서 그래야 하나?
몇 년 후 할빠할마로 살아야 하는 걸까?
미리 걱정하지 말자.
오늘은 그냥 빗소리를 즐기면 된다.
빗소리가 참 좋다. 그래서 울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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