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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라지 연정
    카테고리 없음 2023. 2. 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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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광주리 철철철 넘친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에야라 난다 지화자 좋다. 얼씨구 좋구나 내 사랑아

    도라지 노래다. 도라지 꽃이 필 무렵이 되면~ 도라지 연정(戀情)이 발동한다.

     

    퇴사 후 전원생활을 꿈꾸며 땅을 샀다. 은퇴 후를 생각한 중년의 로망이었다.

    농사 경험도 전혀 없고 풀과 냉이도 구분 못했지만 잘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과 자신감으로 시작했다.

    벌써 5년이 되어가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가는 시간이다.

     

    내 생애 첫 작물은 무엇을 심을까? 고민했다. 최대한 손이 가지 않고 재배가 쉬운(알아서 잘 커주는) 

    작물을 생각하고 인터넷을 뒤지고 결정한 것이 도라지다.

    슈퍼 도라지! 일반 도라지보다 크고 약성도 강하고 키우기 쉽다는 말에 선택했다.

    도라지는 어린 시절 기억도 있어서 낯선 작물이 아니었던 기억도 선택에 한몫을 했다. 

    '그래, 결정했어. 첫 작물은 도라지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시골 땅을 팔아서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갔다. 농사짓는 것이 싫고 고생스럽다며

    땅을 팔아 장사 밑천을 만들었다. 대여섯 살 무렵으로 기억되는데 영등포 시장에서 작은 구멍가게(잡화점)를 했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장사는 망했다. 경험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장사가 잘 될 리 없었다.

    그때 기억에는 집으로 돈 받으러 무서운(?) 아저씨들도 왔던 것 같다. 간신히 빚 정리를 하고 돈 한 푼 없이 외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이것저것 일을 하다가 낮은 직급의 공무원이 되셨고 엄마는 장사로 생계유지에 힘을 보탰다.

    초등학교 3학년 때 9살 터울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서 오 남매가 되었고 우리는 가끔 친척 집에 맡겨졌다.

    아이가 많으면 집주인이 (방)세를 잘 안 주려고 하던 터라 방을 구할 무렵이면 오 남매 중 한 두 명은 

    얼마간 없어져야 했다.  잠시 잠깐 집주인의 눈을 속이기 위한 수였다. 

    일곱 식구가 적은 단칸방에서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고 잠을 잤다. 온 식구가 누우면 엄마는 눕지도 못하고

    벽에 기대어 눈을 붙였다. 

    엄마는 시장 노점에서 장사를 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팔았는데 가장 오래 한 것이 도라지다.

    번듯한 가게 하나 없이 노점에서 갓 돌 된 막냇동생을 업고 도라지를 팔았다.

    생도라지보다는 깨끗하게 껍질을 깐 도라지가 인기도 있고 조금 더 비쌌다.

    명절 대목때면 작은 단칸방은 도라지 산더미로 변했다.

    도라지를 까는 일은 나와 두 살 아래 여동생 몫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도라지를 까기 시작했고

    지겹도록 도라지를 까면서 도라지는 안 먹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다.

    엄마도 낮에는 도라지를 팔고 집에 와서는 또 밤새 도라지를 깠다. 조금이라도 더 팔겠다는 욕심으로

    노점상 단속도 심하던 때라 단속원이 수시로 나타났고 장사판을 뒤집거나 물건을 강제로 실어가는 일도

    많았다. 

    돌이 지난 막내 여동생은 엄마의 등 뒤에 업혀있다가 단속원이 나타나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엄마 팔을 끌며 알려줬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는 급하게 장사판을 싸서 다른 곳으로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

    가끔 그 얘기를 하면서 가족들 마음은 먹먹해진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시절 그 얘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힘든 시대를 살았던 부모세대의 모습을..

    엄마의 도라지무침은 조카들도 너무 좋아해서 가족 모임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메뉴다.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도라지인데  도라지 농사를 짓게 되다니 아이러니다.

    그렇게 지겹다 생각하며 신물 나게 까던 도라지인데 싫지가 않다. 

    도라지무침을 좋아한다. 새콤달콤한 맛과 톡 쏘는 도라지 특유의 향이 좋다.

    흰색과 보라색 도라지꽃도 참 예쁘다. 꽃차로 먹으면 향도 좋고 몸에도 좋다.

    도라지 씨를 심어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감 마저 느낀다. 작디작은 씨 한 톨이 싹을 틔우고 

    튼실한 도라지로 탄생하는 과정은 감동이다.

    도라지를 심은 첫해에는 도라지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법석을 떨었다.

    농사가 막막하고 두려웠는데 자신감(?)도 생겼다.

    이것저것 새로운 작물에 도전해 본다. 자급자족의 삶에 가까운 삶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직접 키운 건강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리고 싶다.

     

    농부 마음은 벌써 봄이다.

    오래간만에 남편과 밭에 갔다. 바람이 조금 불고 찬기운이 남았지만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봄바람이다.

    "우리 놀이터에 왔네~~"

    "그렇지? 우리 놀이터 좋지? 놀이터 없었으면 주말에 방바닥만 뒹굴고 있을 텐데 마누라가 땅 잘 샀지?

    (자화자찬하며 농사일 힘들다고 투정하는 남편을 회유한다.)

    꾸지뽕나무 가지도 정리하고 사과나무 전지도 해주고 3월에 상추 심을 자리도 미리 도닥거려 놓고..  

    할 일 없다고 해도 밭에 가면 이것저것 일거리가 보인다.

    첫 해 심고 받은 씨로 심어둔 도라지도 몇 뿌리 캤다. 실하다. 

    도라지무침도 하고 고추장도 찍어 먹어 볼 생각이다. 새콤달콤 도라지무침 생각을 하니 침이 고인다.

    처음 시도한 마늘농사는 실패해서 아쉬웠는데  지난가을 다시 마늘을 심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시 마늘은 심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걱정을 하면서 살폈는데 잘 자라고 있다. 신통방통하다. 그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은 것을 보니 올해 마늘농사는 성공(?)인 것 같다.

    이 밭 저 밭에 쌓아 둔 비료와 거름을 보면 농사 시작할 시기가 왔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농사도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아직도 초보농부지만 이제는 어느 때 어느 시기에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하는지 정도는 터득을 했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농사에서 지혜를 배운다. 경험이 쌓여가는 중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순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중년 이후의 여가와 취미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면 농사를 추천한다. 작은 텃밭이라도..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 농사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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