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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詩) 베끼어 쓴 거지?”
초등학생 때 여름방학 숙제로 써 간 시(詩) 한편으로 인해 남의 시를 베껴 쓴 나쁜 아이가 되었다. 몇 날을 고민 고민하며 쓴 시였는데 그런 평가를 받고 난 후 마음의 상처가 오래갔다.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도 선한 것이 세 치 “혀”라고 한다.
세 치 혀로써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세 치 혀를 잘못 놀려서 설화(舌禍)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말로써 복(福)을 뿌리는 사람과 독(毒)을 내뿜는 사람이 있다.
복(福)을 뿌리는 사람은 자신과 상대 모두를 행복하고 즐겁게 한다.
그의 말은 힘이 솟고 위안과 긍정 에너지가 되고 다시 만나고 싶어 진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다.
독(毒)을 뿜는 사람은 불쾌감과 불행, 부정의 에너지를 주고 만나고 싶지 않고 멀리하게 된다. 말을 나쁘고
밉게 하는 사람이다.
말은 습관이다.
‘야, 너 이렇게 부르시길래, 직책이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어요.”
직장생활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정도면 용기 있는 직원인데 참다가 속상해서 한마디 한 것이다. 멀쩡한 이름과 직책을 두고 왜 “야. 너” 꼭 이렇게 부르는 걸까? 그렇게 불러야 자신의 권위가 높아지고 우월감이 생기는 걸까?
높은 직위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랫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명령이나 지시, 반말, 비난·힐책, 조롱의 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래서는 안되는데 습관적으로 말을 하는 것인데 잘못된 말의 습관은 평생을 가는 것이 더 문제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시를 읽으면서 말의 씨를 살펴보고 반성하게 된다.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이하 생략) 』
좋은 말의 씨로 한 소녀의 인생을 바꿔놓은 신부님의 일화가 있다.
성당에서 놀고 있던 한 소녀에게 신부님이 말했다.
“너는 예쁘고 말도 참 잘하는 거로 봐서, 이다음에 크면 훌륭한 변호사가 될 것 같다”
몇십 년 후 신부님의 말대로 그녀는 미국에서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다.
힘든 이민 생활 중에도 신부님의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결국 열매를 맺은 것이다.
나쁜 말의 씨로 한 소녀를 창녀로 만든 아버지의 얘기도 있다.
창녀가 된 여자가 목사님을 찾아와 하소연한 사연인데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자신에게 x 할 년이라며 욕을 해댔고 결국 아버지의 말대로 몸을 파는 창녀가 되어 다."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고 상반된 두 사연에 소름이 돋는다.
말은 부메랑이다.
좋은 말의 씨는 좋은 열매로 돌아오고, 나쁘고 악한 말의 씨는 나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복(福)을 주는 말의 씨를 많이 뿌려야 좋은 열매가 복(福)이 되어 돌아온다.
말로 입은 상처는 깊고 오래 기억된다. 어린 시절 선생님에게 받은 핀잔과 비난이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
행복한 사람의 입에서는 복(福)이 나온다. 행복, 사랑, 감사, 칭찬과 격려, 배려와 존중, 긍정의 말이고
불행한 사람의 입에서는 독(毒)이 나온다. 불행, 미움, 저주, 부정, 비난, 원망, 무시의 말이다.
내가 지금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독(毒)을 내뿜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면 이제부터는 복(福)을 주는 말을 많이 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좋은 말의 씨를 세상에 뿌려야 좋은 열매를 맺고 나에게도 좋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말이 바뀌어야 내 삶도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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